https://www.youtube.com/watch?v=syLgjbBQrM4
탈북대학생, 그들이 홀로서기 어려운 이유
인터뷰 녹취
be동사부터 배워야 하는 대학생

    “작년 겨울에 강남에 있는 P 학원에서 6개월 짜리 영어 프로그램을 시작했어요. 탈북대학생을 대상으로요. 문제는 처음에 24명으로 시작했는데, 마지막 날엔 딱 두 명 남았다고 하더라구요. 선생님이랑 수강생 한 명.”

 

    2010년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 조춘래(34, 가명) 씨도 P 학원에서 해당 영어 프로그램을 수강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그는 “나도 진절머리가 나서 마지막까지 버틸 수가 없었다”며 당시의 답답했던 심정을 이야기했다. “선생님이 뭔가 잘 가르쳐 준다는 느낌은 받았다. 그런데 기초부터 올라가는 게 아니라 시험을 통과하기 위한 기술을 가르쳐 준다”며 대다수 탈북대학생들이 중도 포기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같은 대학에 재학 중인 이성남(28, 가명) 씨는 남한 생활 7년 차다. 그는 한국 학생에게 가르치는 방식 그대로 진행되는 영어 프로그램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영어를 가르치는 곳은 많지만,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우리에게 맞지 않는다. 막상 손대면 막막하고 끝이 없다는 느낌만 들어 결국 몇 달 만에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탈북대학생들이 휴학을 결정하게 되는 이유는 세 명 중 한 명 꼴로 '영어 공부' 때문이었다. (남북하나재단 보고서 <2014 북한이탈주민 실태 조사> 결과 휴학생의 28.6%가 해당) 기초가 부족한 영어는 탈북대학생들이 취업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로 느끼는 부분이다. 남북하나재단을 비롯한 NGO, 대학생들로 이루어진 봉사 단체에서도 탈북대학생을 위한 영어 학습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있지만, 탈북대학생들의 표현에 따르면 “떳다방 같은 게 많다”고 했다. 이는 “기초 학력이 부족한 탈북대학생의 수준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학생들은 입을 모았다.

 

    졸업을 앞두고 영어 공부를 위해 학원에 다니는 서울대 재학생 신희영(29, 가명) 씨는 개인의 수준에 맞는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일괄적으로 탈북대학생 전체를 위한 영어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학습 효과가 작고 비효율적이다”며 “개인이 직접 수준에 맞는 프로그램을 선택하고 수강료를 환급받을 수 있는 바우처 제도를 활성화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영어뿐만이 아니다. 탈북대학생의 눈높이에 맞는 취업 진로 프로그램이 연계되지 않고 있다. 15학번 신입생인 탈북대학생 이헌 씨(25, 가명)는 지난 4월, 하나원으로부터 지원 프로그램 안내 문자를 한 통 받았다. ‘6개월 합숙 용접공 교육’에 관한 안내 문자였다. 이 씨는 해당 문자를 직접 보여주며 “내가 대학에 다니는 걸 모르는 것 같다”며 당시의 황당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재무회계 전공자인 이성남 씨 역시 ‘승강기 관리 업무’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 안내 문자를 받아 당혹스러웠다고 전했다.

 

    졸업 후 사무직을 원하는 대학생들에 비해 일자리 수요가 적은 문제가 근본 원인이지만, 대학생들의 눈높이에 맞는 프로그램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지난 2009년 탈북한 서울대생 강다윤(21, 가명) 씨는 로스쿨 진학을 준비 중에도 틈틈이 남북하나재단 홈페이지를 방문해 프로그램 정보를 확인한다그는 “공지 사항을 매번 확인하기 때문에 프로그램 대부분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 직접 해본 프로그램은 없다”고 했다. 강 양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만한 프로그램은 개설되지 않았던 것이다.

 

 

 

 

정보 공화국 남한에서 홀로서기

    이성남 씨는 자신을 ‘정보통’이라 소개했다. 그는 “80-100명 정도 되는 카톡 방이 여러 개 있다. 이곳에서 쓸만한 정보는 바로 쓰고 버릴 건 버리는 것”이라며 “탈북대학생들은 거의 모두 장학금 한두 개씩 받고 다닌다. 외부 장학금 외에도 교회에서 20-30만원 씩 받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천일장학금, 우양장학금, 황해도장학회,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회, 조선일보장학금 등 각종 지원 프로그램에 대해 세부 규정까지 꼼꼼히 알고 있었다.

 

    18살에 한국에 온 강한성(20) 씨 역시 대안학교에 다니면서 맺게 된 인맥을 통해 주로 정보를 얻고 있다. “동문회를 가면 선배들 중 잘된 경우 창업하시거나 대기업에 취업하시거나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신 분도 있어요. 그분들이 조언을 많이 해주시죠.” 이처럼 탈북대학생은 남북하나재단과 같은 공적 창구보다 학교, 동아리, 교회 지인 등 민간 차원의 정보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다. 탈북자 중 취직자의 구직 경로를 파악한 결과 40%가 친구, 친지 및 아는 사람의 소개로 취직했다. 현재 은행에 재직 중인 탈북자 조현성(34) 씨는 “취업 준비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취업에 성공한 유성철(28) 씨 역시 “2년 간 취업을 준비하는 동안 주로 지인들의 조언을 들었고, 내가 취업한 이후에는 다른 탈북자 친구를 소개해서 함께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탈북자라면 장학금을 한두 개씩은 꼭 받는다”는 이성남 씨의 말은 현실과 달랐다. ‘정보 공화국’인 남한에서 탈북대학생들 사이의 정보 격차는 점차 벌어지고 있었다. 이 씨와 같은 대학에 재학 중인 이헌 씨는 현재 기초생활수급지원 외의 혜택을 일절 받지 못하고 있었다. “기초수급비랑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해서 받는 돈이 수입 전부예요. 장학금은 받는 게 없고요. 임대 아파트 월세는 한 달에 20만 원 정도 되고요.”

 

    장학금 등 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 격차만으로 탈북대학생의 한 달 평균 수입은 100만 원 넘게도 차이가 날 수 있다. 왕복 4시간 거리를 통학해야 하는 이헌 씨 역시 주변 사람들로부터 정보를 얻는 편이라고 했다. 그 역시 남한에서 대안학교를 다녔지만, 학교의 규모가 너무 작아 정기적인 동문회가 만들어지지 못했다고 했다. 대학에서도 별다른 커뮤니티에 소속되지 못한 이 씨는 남북하나재단, 장학금과 지원 프로그램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정보 격차 문제에 대해 남북하나재단은 “사적 기관에서 장학금을 주는 것까지 우리가 파악하고 모든 탈북대학생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한다. 북한대학원대학교 김신희 박사 역시 “공식적 정보 전달을 통한 형평성을 위해 국가가 탈북대학생을 모두 따로 파악하여 관리한다는 건 민주주의 국가에서 생각하기 어려운 조치"라며 "뿐만 아니라 탈북자들은 정부가 자신들을 그렇게 관리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것에 매우 민감하므로 이 부분은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고 문제 상황의 복잡함을 강조했다.

 

    서울대학교 통일교육연구센터장을 맡은 박성춘 윤리교육과 교수는 “기존의 남한 학생 - 북한 학생 연결 프로그램보다 탈북대학생들 사이의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며 정보 격차 문제를 풀어나갈 방법을 제시했다. 공식적인 통로로 해결하기 어렵다면 탈북대학생들 간의 사적 네트워크를 활성화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성춘 교수 "북한학생들끼리 네트워크 형성 지원 필요"
Powered by  Jumpstart Georgia